11월 중에 가을비가 이렇게 추적거린 적은 별로 없다. 게다가 기온까지 봄 날씨다. 농원의 개나리가 색 바랜 이파리를 단 채로 노란 꽃이 피었다. 화분 속의 여름꽃 문주란도 짧은 목을 내밀더니 하얀 꽃이 피어 버렸다. 이 무슨 얄궂은 조화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지역 방송의 티브이 화면에서는 서부 경남의 명품 산청곶감이 가을비에 곰팡이가 핀 채로 건조대에서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내년 설 대목을 기다리는 농업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이상 기온을 탓하면서 그냥 쳐다보기에는 너무 민망하다. 하나뿐인 지구, 우리 후손에게 빌려온 자연이 자꾸 망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