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길을 그냥 갈 것이지 한반도 서해로 방향을 튼 태풍이 전남지방과 서해안에 많은 피해를 주고 북상하였다. 이전에는 통상 중국으로 상륙하던 태풍이 한반도 나들이를 즐기는데 영 반갑지가 않다.
화면을 채우고 있는 과수 농가들과 전복 양식 어민들의 눈물이 가슴을 아린다.
'상처는 상처를 먼저 알아보는 것'이라고 어느 시인이 절규하였듯이 동병상련의 농사꾼 마음이다.
농원에도 작은 피해가 있다.
무리로 심은 해바라기들이 절반은 누워버렸고 소나무 밭에서 제일 키큰 해송의 윗가지가 부러져 버렸다.
솔밭 그늘속의 해바라기는 무이파가 얼마나 머리채를 쥐고 흔들었던지 패잔병처럼 흐느적거리고 있다.
연못의 선잎들도 센바람에 편안히 그냥 누워버렸다가 허리를 세워보려 하지만 불가능하다.
한번 구부러지면 곧게 펼 수 없는 제 몸의 버릇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래간만에 동행한 고교동기가 일손을 덜어 주었다.
제가 심은 작물에 유독 온 힘을 쏟는 욕심이 있다. 오늘도 철 늦게 심은 참외를 제일 먼저 들여다보더니 어느새 고구 마이랑의 잡초제거 작업도 마쳐 버렸다. 있는 듯 없는 듯 바지런하게 혼자서 꼬무작거리며 늘 성과를 올린다. 그리고는 냉장고를 뒤져 알코올 음료와 멸치 대가리를 찾아내는 것도 그의 몫이다.
"어이! 일은 놀면서 하는 거야,, 뭐가 쫒아 온다고 그리 한꺼번에 힘을 쓰나 이리 와 한잔하고 해."
해바라기에 지팡이를 꽂아 주는데 거의 세 시간이 걸렸다.
덩치가 큰 해바라기들이 피해가 많은 것은 센 바람의 탓도 있지만 제 몸만 크고 뿌리가 튼실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비탈에 심은 해바라기 몇 개는 몸집도 클 뿐 아니라 태풍에도 제 몸을 잘 건사하였다.
지팡이는 고춧대로 대용하니 쓸모가 있다.
연못 귀퉁이에는 '청아'와 '오가하스'가 꽃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