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버려진 우편함을 가져와 빨간 페인트칠을 하고 마르기를 기다려 농원 입구의 보안등 전봇대에 매달았다.
요즘 젊은이들의 세상은 안부 편지는 물론이고 세금계산서, 사진, 설계도까지 개인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주고받는 첨단 정보기술을 맘껏 누리며 살고 있기 때문에 우편함의 존재는 점점 잊혀 가고 있는데 농촌은 아직도 그 기능을 하고 있다.
처갓댁 담벼락 밑에 버려진 녹슨 우체함은 원래 제가 달렸던 곳에 붙여진 예쁜 나무 우편함에게 밀려 버림을 받았지만 아직 더 일을 할 수 있다는 양 윗뚜껑 아래 아가리를 벌려 속을 보여 주고 있는데 껍데기 모서리만 칠이 벗겨져 녹이 벌겋게 슬었을 뿐 속은 말짱한 편이었다.
그래서 바로 차에 실렸고 빨간색 새옷을 입고 농원 입구에 다시 매달려 "편지"를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플라스틱 편지'가 아닌 퇴비신청서, 산불조심 홍보전단, 새주소 안내 홍보물 등이 우편함 아가리에 꼽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년필로 한자 한 자 천천히 쓴 '내가 나에게 보내는 편지'도 그 속에 담겨 있을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