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유월 중순이면 청도 과수원의 매실 수확은 큰 행사 같은 농사일이지만 약 한 달 만에 다시 찾아 오늘 새벽에 동업자와 함께 본 매실나무의 처참한 상황은 상상 이상의 가뭄에 쩌든 당혹함의 그 자체였다.
과수원을 만들면서 용수대책으로 파놓은 연못물은 바닥이 나 있고 매실나무의 올해 새로 자란 가지들은 발갛게 타 말라 버렸으며 가지에 달린 매실의 8~9할은 쪼들어 말라 붙어 버린 것이다.
홍매실의 상태는 더 불량하여 수확할 것이 없고 탐스런 굵은 청매는 나무둥치나 뿌리에서 가까운 굵은 가지에 달린 열매만 수확할 수밖에 없을 정도다.
게으른농부가 기껏 해준 일은 조금이라도 더 가뭄에 버틸 수 있게 띄엄띄엄 수확이 끝난 굵은 가지를 닥치는 대로 톱질하여 잘라주는 일뿐이었다.
들녘의 경작지는 일부 한해상습지를 제외하고는 관수시설이 완비되어 지금 모내기가 한창이지만 산지에 펼쳐진 과수원, 원예 주산단지, 고랭지 밭작물을 관리하시는 농업경영인들께선 이 가뭄에 엄청난 고행의 농사일이 눈앞에 닥쳐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혹 '일년농사 포기하고 내년을 기약하면 되지' 하실 분이 계시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이 가뭄이 계속되면 내년의 꽃눈에도 지장이 생기고 정상상태로 나무가 몸을 추스르려면 한 3년의 세월이 지나야 원상회복이 된다고 한다.
새벽 5시에 출발한 농삿일이 오전 10시에 마무리될 즈음 게으른 농부와 동업자의 주머니 속 휴대폰에서 동시에 경보음이 울린다.
기상청의 폭염경보 발령 메시지다.
정오부터 오후 5시까지 야외활동을 자제하고 시원한 곳에서 물(?)을 많이 마시란다.
그런데 자연의 생물계에 대한 가뭄처방은?
없다.
자연계는 자연적으로 스스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끝까지 수분을 조절하며 남겨준 매실을 소중히 수확해보니 대략 양파망 너 댓 개는 되는 것 같다.
매실즙을 만들거나 씨앗을 뺀 후 매실장아찌도 만들어 가뭄 중에 고맙게 수확한 매실로 밑반찬을 만들면 한 삼 년 먹을 수 있겠다는 동업자 말에 조금 위안을 받았으나 몸과 마음은 무척 피곤하고 힘들었던 농사일을 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