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몇 날 몇 밤을 추적거리더니 하늘 개이고 아침 바람이 선선하다.
폭염이 밤낮으로 괴롭히고 열기가 식을 것 같지 않더니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씀과 같이 청명한 가을이 어김없이 저절로 또 찾아오신 것이다.
주로 조경소나무가 심긴 농원에도 완연한 가을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세 곳의 연못에는 고개꺾인 연밥 줄기와 선 잎들이 가을바람에 부석거리며 서있고 당귀가 심긴 약초밭에는 잡초처럼 핀 부추꽃이 하얗다.
아로니아 밭은 이미 노랗게 단풍이 물들고 있고 장송 몸통을 껴안고 기어오르는 능소화 붉은 꽃은 꼭대기에서 남실거린다. 바로 아래단에 심긴 배나무는 노란색 봉지를 뒤집어쓴 다섯 개의 배가 가지 끝에 힘겹게 매달려 있다.
애기사과와 모과 열매는 모진 여름 폭염에 기가 죽었는지 과실 상태가 형편없으나 작으면 작은대로 거둘 생각이다.
연못 앞 오르막 언덕에는 상사화 씨앗이 이미 여물고 있고 그 아래쪽으로는 상사화 사촌뻘쯤 되는 빨간 꽃무릇 꽃대가 가을비 후 힘차게 솟아나고 있다.
온실 앞 화단도 방아와 박하 꽃이 파랗게 피어서 가을 정취를 한껏 북돋아 주고 있다.
가을은 곡식을 여물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몸과 마음까지 맑게 하는 계절인 지라 지금부터 차분하게 마무리를 시작할 수 있게 한다.
자! 이제부터는 수확의 기쁨과 함께 찾아오신 가을을 동장군이 들이닥칠 때까지 마음껏 즐길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