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나무를 농원에 옮겨 심을 때는 이 나무 열매가 기침 천식에 효능이 있고 '보리똥 서 말만 먹으면 고질병 천식도 낫게 한다'는 예기를 듣고 시작하였는데 몇 년 동안 보리똥 효소즙을 만들거나 과실주를 만들었으나 정작 먹어주는(?) 사람이 없어 몇 년째 냉장고 신세를 지다가 그 귀한 약초를 고추장 재료로 다 써버린 것을 알고는 아예 수확하지 않은 지는 3 년째다.
그리고 작년에는 조경수로 바꾸기 위해 몸집을 과감하게 줄이는 강전지 작업까지 해 주었던 것이다.
올봄 일찍이 작고 하얀 꽃이 달렸지만 열매에 대한 욕심이 없어선지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았고 오늘 아침에 정말 우연히 발갛게 익어가는 보리똥과 마주친 것이다.
이른 아침인지라 한알을 입안에 넣어 터트렸더니 떫으면서도 달콤한 과즙이 입안에 가득했다.
그 자리에 언뜻 떠 오른 생각은 '작년처럼 또 수확 포기해?'였다.
수확포기는 게으른 농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택이다.
제자리에 그냥 내버려 두면 보리수나무는 섭섭할 테지만 농익을 대로 농익다가 마지막에는 저절로 낙과되고 말면 그뿐이기 때문이다.
수확을 한다면 먼저 열매 따면서 보리수 가시에 팔뚝 언저리가 찔리는 통증을 감수해야 할 것이고 효소를 만들기 위한 재료 구입비용이 발생할 것이고 끝으로는 먹어 줄 사람도 찾아야 할 형편이다.
농원에 심긴 보리수 5 그루의 가지마다 보리똥이 발갛게 익어 가고 있다.
곱게 익어가고 있다.
농원에 시한부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