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전각 9

전각 습작(癸巳年)

지난해 틈틈이 작업해서 선물로 드린 몇몇 전각 작품의 흔적을 찾아 게시한다. 필자는 평소 정리하는 버릇이 부족하고 일을 잘 미루기도 하며 게으른 탓에 사진 창고의 이곳저곳에 숨겨져 있는 흔적들을 끝내 찾지 못하여 그 일부만 게시하였으며 차후 보강할 예정임을 밝혀둔다. 사진1. 성명인, 3*3cm, 전남 해남산, 납석. 이분은 부산에서 구청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하고 지금도 지역사회를 위하여 쉬지 않고 일을 찾아 하시는 정열적인 분이며 필자의 고교 친구의 동향 친구로 소개받아 술 한잔한 후 의기가 투합하여 바로 서로서로 말터놓기한 환갑 넘어 사귀고 있는 친구이다. 평소 말술에 입담이 좋아 중국의 시인 이태백의 "산중 대작"이란 한시를 방각하여 선물했다. 사진2. 성명인. 3*3cm, 전남 해남산, 납석. 이분은..

작품파일속의 인영흔적(울산시절)

오늘 소개드리는 인영들 역시 필자의 직장생활에서 인연이 맺어졌던 이들의 인영이다. 주로 같이 근무한 직원들의 것으로 사내외의 여러 가지 일이 바빠 취미생활의 여가가 부족했던 시절이었다. 이 시기에 태풍 '나비'가 방문하여 직원들이 밤새워 근무하는 등 고생이 많았던 추억이 있기도 하였다. 특히, 일에 부담을 많이 주었던 중간관리자와 연세가 지긋하신 분로서 작지만 보답으로 정성 들여 돌을 깎아 선물한 기억이 새롭다. 도루묵 매운탕을 즐겨 먹었던 식도락 동기들이기도 하다. 이 중의 한분은 2년 전에 퇴직하셔서 귀향하셨고 또 한분은 귀여운 딸의 주례를 청해와 고사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처음으로 주례사를 작문해보는 기쁨도 누린 시절이기도 하다. 필자의 서재에는 그분의 귀여운 따님이 신랑의 팔을 감싸 안고 목단꽃(모..

작품 파일속의 인영 흔적(창원시절3)

세 번째는 전국단위에서 출장을 오셨거나 필자가 방문한 지방의 관계인에게 선물한 성명인을 모았다. 이속에는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전문기술 사전을 발간하여 사전을 선물 받은 보답으로 전각을 답례한 작품도 있고 조직의 두 번째 최고관리자로 승진하셨던 분의 인영도 보인다. 새삼 느끼는 것은 삶에 있어서 무엇인가를 이루어야만 한다면 반드시 댓가를 치러야 한다는 소박한 진리를 사회생활의 종반에서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삶은 단순한 길이다.

작품 파일속의 인영 흔적(창원시절1)

오늘 소개드리는 인영들은 2001년도 상순부터 울산으로 근무지 변경되는 2004년도 중순까지의 작품 인영들이다. 인영의 수량이 다소 많기 때문에 크게 3 분류하여 기록해 놓고자 한다. 첫 번째는 필자와 제일 가까운 거리에서 근무를 한 고교, 대학의 후배 직원이거나, 또는 같은 직렬을 가진 분들의 성명인 인영들이다. 작업의 시기는 전각에 입문한 97년도부터 최근까지 생산한 작품들이다.

연하우편을 보내는 재미

예술 전각에서 돌을 깎거나 새기는 전각 도법(篆刻刀法)과 한지에 인영(印影)하는 과정은 하드웨어 분야이지만 새겨야 할 자획을 자전에서 구하고 예술 전각으로 구성하는 전각의 장법(章法)은 소프트웨어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추사 김정희의 전기를 쓴 '완당 전'을 읽어보면 서예가이며 학자이고 고위 관료를 지낸 김정희는 아호가 당신의 낙관의 수만큼이나 많았는데 '추사''완당'을 비롯하여 그 수는 100개를 훨씬 넘게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기록에는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장법에 해당되는 것은 김정희의 몫이고 수하에는 전각을 새기는 전담의 전각가를 두었는데 그분은 후에 서예가의 반열에도 드는 과정을 볼 수가 있다. 양반이 글을 장법에 맞추어 써 주면 기능공이 전각을 새겼던 것이다. 하드웨어의 작업은..

작품 파일속의 인영 흔적(제주시절2)

이번의 인영들은 2000년~2001년 초순에 집중적으로 깎은 성과품으로 지자체 공무원 다섯 분 정도가 포함되었을 뿐 거의가 제주본부 직원에게 선물한 예술 전각의 인영들이다. 근무 이동의 적기가 지나가면서 역시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제법 많은 수의 낙관용 전각 작품이 생산되었다. 인영을 찍은 한지의 여백에는 감사의 글을 남긴 것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그 당시에는 섬사람들이 전각을 처음 접한 감동이 대단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여직원들의 기뻐했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순서 뒤에는 부산의 B대학의 후배 여교수가 제주태생으로 제주 본가에 귀향했다가 찾아주어 감사의 뜻으로 새겨준 인영도 보인다. 인영들을 다시 감상하다보니 타임캡슐을 타고 거꾸로 시간이 흘러 따뜻한 섬으로 들어간 듯한 착각마저 든다. 그리운..

작품파일속의 인영흔적(제주시절)

1999년에 제주 근무를 자원하여 섬으로 들었다. 꼬박 2년을 근무하면서 섬사람들과 처음 접촉하였을 때의 언어장벽의 생소함이 그립다. 공직의 근무자들은 표준어를 일상어로 대화를 하지만 자연마을의 현지 도민들과 만나면 8~9할은 알아들을 수없었다. 대화가 어려우니까 더욱 살갑게 다가가야 마음을 열어준다. 그러면서 제주사투리를 배울 수 있었고 현장 출장의 재미를 그것에서 찾았다. 공직의 사람들도 제주사람들끼리는 제주 표준어로 대화하게 되고 외지인(육지사람들)들은 그때마다 거꾸로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인영을 편집하면서 내용을 보니 전각을 선물한 사람들은 도청,시군 공무원들이 많고 직장의 직원, 일본어학원의 원어민 교사, 대금교실의 선생님의 인영도 보인다. 제주생활의 단조로움을 조금이라도 덜까 하여 일본어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