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삶터,쉼터 337

첫눈

올겨울 첫눈이 내렸다. 창원지방은 작년 가을부터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아 산천초목이 바짝 말라붙어 버려서 가는 곳마다 먼지가 폴폴 날려 비염을 달고 계시는 분이나 연세가 높으신 분들의 호흡기 질환의 잔병치레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동네마다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2~3시간 내린 함박눈에 간선도로의 크고 작은 차들은 거북이 걸음이었으나 오후 다시 햇볕이 드는 바람에 여간 아쉽지 않은 찔끔 눈 소식이 되고 말았다. 다음 주에도 이 삼일 정도 비 예보가 있으니 오늘처럼 눈으로 바뀌어 내렸으면 좋겠다.그리되면 내린 눈이 녹으면서 금이 간 흙덩이를 촉촉이 적셔줄 수 있을 테니까. 집 앞 공원에서 한참 동안 내리는 함박눈을 맞으며 놀았다.

비파꽃

겨울 꽃나무에 꽃이 폈다. 작은 꽃뭉치에서 뿜어지는 비파 꽃향기에 벌들이 홀려 어찌할 줄 모르는 듯 우왕좌왕 번잡하기 그지없다. 집 마당에 심겨진 비파나무는 열매를 따낸 직후 덩치를 줄이기 위해 키가 큰 줄기를 잘라 준 곳에서 새촉이 여러 군데 발아했다. 대설. 동지, 소한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고 본격적인 동장군이 몰아칠 겨울 날씨로 접어들고 있는 지금, 꽃피고 새싹까지 움트고 있으니 비파나무의 식생은 지구환경의 지배를 비껴가는 어떤 특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겨울 초입부터 벌써 목감기의 증세를 보이는 게으른농부는 그저 비파나무가 부러울 따름이다.

가을비

가을비가 남해안 해안가 섬지방에 요란스럽게 내렸다. 한여름의 폭우와 다름없어 많은 재산피해와 공공시설이 부서졌다. 기상청 예보가 잘 맞지 않는 것은 모대학에서 연구한 결과 해수면에서 발생하는 수증기의 양이 5%만 증가해도 해안가의 강수량은 5~8배나 늘어나 집중호우를 쏟아붓는다고 한다. 그래서 거제섬(308밀리미터)과 부산의 영도섬(358 ")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이 가을비는 논농사에는 그리 큰 이익은 없으나 김장채소를 파종하는 시기라서 밭작물에는 많은 도움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보슬비처럼 조용하게 며칠동안 차분이 뿌렸으면 더 좋았을 텐데. 누룩 관리 때문에 매일 농원 언덕을 오르는데 언덕 여덟 곳에 심긴 꽃무릇이 먼저 꽃대를 올린 놈은 활짝 폈고 지금 꽃대를 올리는 놈은 꽃촉이 새빨갛다. 꽃무릇도 ..

우편함 둥지

버려진 우편함을 주워와 빨간 페인트로 치장하고 농원의 대문 옆에 메단 지 3년 반이 지났다. 원래 계획대로 작은 전원주택이 지어졌다면 우편함의 기능을 제대도 했을 테지만 주변여건이 녹록지 않아 꽤 긴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 매번 농원을 찾을 때마다 우편함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 옆을 지나치면서도 우편함이 선뜻 눈에 띄지 않는 투명 우편함(?)으로 전락해 버린 지도 오래됐다. 어젯밤 내린 비로 촉촉해진 농원을 찾은 오늘 아침 빨간 우편함에 지푸라기가 소복한 물체를 느끼고 가만히 들창을 올려보니 웬걸! 날짐승의 둥지 하나가 소복하게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둥지 속에 산란 흔적은 보이지 않고 어미새의 것으로 보이는 깃털 한 개만 남겨져 있을 뿐이다.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대문옆에 그것도 눈에 잘 띄는 ..

상사화 꽃줄기 발아

최근 사나흘 동안 밤 시간대 특히, 새벽에 40~80 밀리의 강우량이 예보되었던 창원지역의 실제 강수량은 잔뜩 메마른 농토와 산천초목을 겨우 적실 정도의 소나기만 서너 차례 퍼부었을 뿐 장맛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아 텅 빈 저수지를 제대로 채우진 못한 것 같다. 언덕의 연못앞에 모아 심어 준 상사화 비늘줄기들이 지독한 폭염의 공세에도 살아남아 꽃줄기를 세우고 있다. 사흘 동안 비 핑게를 대고 농원을 가보지 않다가 온실 안의 고추, 가지와 피망 채소의 물 주기가 생각나 오늘 이른 새벽에 농원 언덕을 오르다가 상사화 촉들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기다리고 기다린 여름꽃이기에 무척 반갑다. 이르면 7월 중순이면 꽃을 보는데 8월 중순이 다 되어가는데,,, 비 냄새를 맡고서 드디어 꽃줄기를 올릴 기회를 잡은 것이리..

살구

약 두 달 전의 [살구꽃]이라는 글에서 왜소한 몸집에 달린 살구꽃이 벚꽃보다 못하고 꽃향기에서 꿀벌에게 마저 외면당하는 처지가 안쓰러워 퇴비 몇 삽을 더 얹어 주어야겠다는 애정(?) 어린 배려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노란 살구가 잘 익었다. 어느 날 혹시나 하고 잎 사이를 들춰보다가 열매가 맺힌 것을 보고 벚꽃나무에서만 노는 줄 알았던 꿀벌이 은근슬쩍 살구꽃에도 다녀간 것을 눈치챘고 농원을 드나들 쩍 마다 살구의 상태 확인하는 것이 일이 되다시피 하였으며 어쩌다 다른 일에 묻혀 그 일을 놓쳤을 때는 그다음 날 부리나케 농원으로 가기도 했다. 두 달이 지난 오늘 아침에 살구 다섯 알을 수확해서 동업자에게 상납하고 그중 한알은 부엌 식탁 위 두고 며칠 더 감상하기로 했다. 어저께 모 라디오 방송에서 요즘 인기..

능소화

적황색의 종모양으로 생긴 능소화가 만발했다. 가뭄극복 차원의 스프링클러 가동을 위해 아로니아 밭에서 작업 중 아주 익숙한 붉은 꽃이 낙화되어 있어 거목 소나무를 쳐다보니 주렁주렁 능소화가 매달려 꽃이 되어있다. 매년 한여름이 끝날 즈음 적황색의 고운 꽃이 피어 여름꽃으로 구분되었던 능소화는 5 년 전 뿌리 나누기로 농원에서 제일 오래된 거목 소나무 밑에 심겼으나 가지에 달린 흡착 뿌리가 소나무를 위협적으로 감고 오르는 모습과 꽃에 독성이 있어 만지면 눈에 해가 된다는 사유로 동업자는 여러 번 캐어내 버리자고 권고하였으나 차일피일 미루어온 터였다. 나무를 구해 심을때 마음과 기르면서 마음이 변해 막상 캐어낼려니 그 또한 '모진 마음을 먹어야 가능한 일!' 내일로 모레로,,,내년에 하자고 미루고 미루었던 것..

꽃연

집 마당 화분 속 꽃연에서 처음 봉오리가 맺혔다. 일찍 분갈이해 준 순서대로 뜬입, 선잎, 꽃대가 올라오는 것이다. 한낮에는 한여름 날씨고 아침 저녁으로는 보온이 되는 겉옷이 필요한 세상을 살고 있는데도 계절은 다소 빠르거나 간혹 늦는 수는 있어도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올 해의 꽃연 분갈이는 집 마당의 화분으로 시작해서 농원 온실 속의 꽃연 분갈이까지 짬이 날 때마다 해 주었는데 그 간격은 거의 한 달 정도 차이가 나버렸다. 관심 줄 일이 하도 많다는 건 변명에 불과할 뿐이고 나이가 먹어갈수록 점점 게을러지기 때문이다.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일이 그만큼 늘어 간다는 것이다. 빨리 피는 꽃,늦게 피우는 꽃- 모두 자연의 이치대로 피고 지는 것이니 게으름 피는 것도 자연에 순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