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삶터,쉼터 337

한파

경남 일원에도 한파주의보가 예보되더니 농원의 연못에도 살얼음이 얼었다. 월 동준 비랄 것도 없지만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지하수 관정의 양수기 보온과 농원에 이리저리 깔렸던 비닐호스를 수습할려니 마음만 바쁘다. 더군다나 고구마밭에는 아직 캐어내지 못한 고랑이 두개나 남아있어 콧물이 주룩주룩 하면서 뒤늦은 가을걷이까지 하다 보니 점심도 못 먹고 오후 두 시까지 북 치고 장구치고 혼자서 야단법석이다. 제법 날씨가 추웠던지 코끝이 시렸고 귀가해서 밥을 먹을려니 얼굴과 귓불까지 화끈화끈한다. 12월을 시작하면서 바로 매서운 겨울날씨를 맛봤다.

겨울비

올 겨울 날씨는 예년보다 그리 춥지 않을 것이라는 기상청 장기예보에 난방용품과 아웃도어 의류업계는 울상이라고 한다. 겨울이 따뜻하다면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과 어린아이들을 둔 젊은 부모들은 겨울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겨울 날씨가 따뜻해지면 각종 병해충들도 쉽게 월동함에 따라 농어촌의 농어업인들은 그리 반갑지는 않을 것이지만 온실 농사와 축산농가들께서는 난방비가 절약되는 이점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우산장사와 짚신장사 아들을 둔 늙으신 에미의 심정처럼 올겨울 날씨는 너무 춥지도 않고 너무 따뜻하지 않게 삼한사온을 지키는 겨울이었으면 좋겠다. 남쪽 지방은 비가 내리지만 중부 이북은 눈이 내리는 지역도 있다고 하니 지금 내리는 비는 겨울비가 틀림없고 집 앞 삼각공원의 은행나무, 단풍나무와 집 마당의 모란꽃 나..

가을나들이

막바지 가을 나들이는 청도 과수원이다. 동업자와 단둘만 나서는 곳은 일이 반, 노는 것이 반인 나들이고 행선지는 거의 석산 농원이거나 청도 과수원이다. 과수원의 풍경은 가을이 무르익어 둥시감은 발갛게, 오갈피는 까맣게 익어 무게에 못 이긴 감과 오갈피 열매가 가지 끝에 힘겹게 대롱대롱 달려있다. 감수 확전에 먼저 작업한 것은 자두나무 등걸을 잘라내는 일이다. 성목이 되어버린 자두나무 가지가 진입도로를 가로막아 차량 진입을 방해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이참에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둥치째 큰 줄기를 잘라내는 것이다. 이어서 오갈피 열매를 양파망으로 두 개 수확한 후 둥시감 한 상자를 채웠을 때 동업자는 나머지는 다음에 따는 것이 좋다며 서둘러하던 일을 마무리한다. 이슬을 몇 번 더 맞혀야 둥시감의 당도가..

빗속 제초작업

태풍 나크리가 서해상으로 북진 중인데도 과수원 제초작업을 나섰다. 며칠간 얼굴이 따가울 정도로 계속된 땡볕에 혼나고서 바람이 좀 불면 작업조건이 더 좋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새벽 일찍 집을 나선 것이다. 과수원에는 개망초와 억새가 어른 어깨높이까지 자라서 길이 없어져 버렸다. 동업자는 약 30분동안 먼저 진입로를 만든 후에야 컨테이너 농막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예초기의 열기도 탈수현상도 덜할뿐더러 가끔 소나기까지 내려 속도감 있게 작업을 마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태풍 나크리가 한반도로 북상하면서 조성된 흐리고 바람 불고 소나기가 내렸던 날씨 덕분이다. 처삼촌 벌초하듯이 억새와 개망초 위주로 예초작업을 끝내는데 걸린 시간을 따져보니 약 4시간 정도 걸렸고 지난 번의 사흘간 제초작업보다 엄청 수..

새벽길

석산 농원 가는 길의 용강고개를 넘어서자 하늘에 펼쳐진 구름모양이 잠덜 깬 두 사람의 눈앞에 화려하게 펼쳐졌다. 동이 트는 새벽하늘에 그려진 구름 창조물에 한참동안 경탄하며 주남저수지 쪽으로 멈추다가 또 서행하기를 반복하면서 자연이 베풀어 준 예술작품을 만끽하는 재미를 누렸다. 10여분에 불과한 시간였지만 구름의 모양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그대로 찬란하게 하늘에 걸려 있었다. 어릴 적 야시 비 뒤끝에 펼쳐지는 일곱 가지 무지개 빛깔보다 더 웅장하면서 더 곱다. 하늘을 캔버스삼아 그려진 한 폭의 추상화ㅡㅡㅡ새벽길에 나서면 종종 뜻밖의 선물을 받아서 너무 좋다.

상사화

연한 분홍색 꽃이 한여름 땡볕에 활짝 폈다. 이른 봄 푸르른 잎을 먼저 올려 땅의 양기를 듬뿍 빨아들였다가 양파처럼 생긴 구근에 충분히 저장한 후 그 잎은 노랗게 말라버리고 한여름 열기가 대지를 후끈 달군 후에야 꽃대를 하루 만에 50 센티미터 내외로 밀어 올려 진달래 꽃빛의 꽃잎을 하나씩 피게 한다. 난초 잎처럼 생긴 녹색잎이 먼저 자라서 사그라지고 난 후에 꽃대가 생겨나는 생태적 특징 때문에 잎이 달린 채로 꽃을 볼 수 없는 꽃이다. 옛사람들은 '연인들이 서로 만날 수 없어 그리워 한다'는 의미의 꽃 이름으로 상사화라고 이름 붙였다. 재밌는 내용의 꽃이지만 하룻밤 풋사랑에 울고 첫사랑에 배신당하고 자진하였던 어린 기생의 한탄조 시조가 가슴 저리게 생각나는 그런 가냘픈 꽃이다. 절집의 화단이나 대웅전의..

토종닭의 운명

이번 주 금요일이 초복이고 열흘 후 7월 28일이 중복 그리고 다음 달 7일이 말복이다. 삼복이 코앞까지 닥쳤다. 산 짐승을 굶기기 싫어 거의 매일 사료때문에 농원 들락거리기가 15개월쯤 되었다. 동업자는 농원에 올때마다 냄새난다고, 지저분하다고, 닭들이 너무 크게 자랐다고 투정의 강도가 점점 높아지는데 돌쇠 무리는 더위에 지쳤는지 먹이활동이 부진하다. 날씨 탓도 있지만 보드라운 잡초를 썰어 주면 쪼는 시늉만하고 그만 거뜰 떠 보지도 않고 산란용 축협사료에만 죽자 사자 매달리니 사료값 감당하기도 벅차다. 요 며칠동안에는 축협 사료량을 늘려 지급하고 있다. 예부터 목숨을 뺏기 전에는 먹을 것이라도 많이 주는 풍습이라도 지켜주고 싶다. 초복이 내일 모레다.

문주란 개화

태풍 영향으로 잔뜩 흐린 날 아침에 실타래처럼 생긴 하얀 꽃이 피었다. 제법 긴 화분에 심겨 진 문주란이 긴팔을 흔들 듯 꽃대를 들어 하이파이브를 외친다. '나! 꽃 피웠어!' 멀리 남태평양의 외딴섬에서 무리 지어 살다가 태풍의 바람에 떠밀려 제주도 해안가에 안착했던 생명이 다시 한반도의 남해안 따뜻한 고장 창원에 정착한 열대식물 ㅡ문주란 15여 년 전 제주도 근무 중에 함덕읍 협재해수욕장 인근의 화단에서 씨앗을 주워와 집 마당 구석에서 발아시켜 번식한 문주란이 매년 알싸한 꽃향기를 선물해 준다. 태풍 너구리가 북상중이다.

돌쇠

한여름 같은 날씨에 토종닭들의 우두머리인 돌쇠가 닭장 안의 황토흙에 구덩이를 파고 몸을 식히고 있다. 배합사료만 먹여 반지르르 하던 깃털에 흙을 한껏 끼얹더니 암탁이 알을 품듯 주저 않아 몸의 열기를 빼내고 있다. 경쟁자 강쇠가 도태되고 난 후 우두머리에 등극한 돌쇠는 기가 한껏 살아서 암탁들을 마음대로 주무를 뿐 아니라 강쇠가 누리던 폭군의 성질머리를 그대로 이어받아 사납기 그지없다. 입식한 후 사계절을 보내니 몸짓이 비대해져서 순차적으로 강쇠의 뒤를 따라 도태될 시기가 다가온다. 삼복이 점점 다가 오는데 망중한을 즐기는 돌쇠,,,

상쾌한 기분

'상쾌한 기분'이라는 꽃말을 가진 금계국이 농원의 이곳저곳에서 만발했다. 한낮의 기온이 유난히 높은 날씨가 계속되는 늦봄에 코스모스 꽃 모양을 닮은 밝은 노란 물결이 저수지를 향하여 손짓하는 듯 하늘거린다. 작년보다 훨씬 넓은 면적에서 저절로 싹이 트더니 꽤 가문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 포기에서 수십 개의 꽃대를 올리고 있다. 이틀 전부터 한 두 개씩 피기 시작하여 사흘 만에 온실 주변에 노란 꽃이 가득하다. 노란 리본의 물결이 봇물처럼 넘쳐나 아래로 아래로 흘러나리고 있다.